일본의 노년 이혼 급증 현상과 그 사회적 파장
일본 노년기의 이혼,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다
일본 사회는 고령화와 함께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변화는 ‘노년기 이혼’의 급증이다. 과거에는 노년기의 이혼이 사회적으로 드물고 부정적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몇 년간 60세 이상 고령자 부부의 이혼은 일본 전체 이혼 건수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가족 해체를 넘어 사회적 안전망, 지역 공동체, 복지 제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구조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대 들어 65세 이상 부부의 이혼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 이혼 비율 중 60세 이상 부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를 상회했다. 특히, 배우자의 퇴직 시점 이후 혹은 자녀가 독립한 후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이 현상은 ‘졸혼(卒婚)’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일본 사회에 강한 인식을 남기고 있다. 이혼이 중년이나 젊은 층의 문제로만 여겨졌던 과거와는 달리, 노년 이혼은 이제 고령 사회의 중요한 가족·사회 정책 과제로 인식되게 시작했다.
노년기의 이혼은 단순히 부부 관계의 해체로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고령자의 경제적 독립성, 의료·돌봄 수요의 재조정, 정신 건강 악화, 지역 공동체 내 역할 변화, 그리고 새로운 고독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일본 사회에서 급증하는 노년 이혼 현상의 배경과 원인, 통계적 양상,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 대응 과제를 모색하고자 한다.
일본 노년 이혼의 구조적 배경
노년 이혼이 증가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전통적 가족관의 변화다. 일본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주의’와 ‘남편 중심 가부장제’ 문화가 강하게 뿌리내려 있었으며, 특히 여성은 결혼 후 전업주부로서 남편과 자녀를 중심으로 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고도성장기 이후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적 자립성이 높아지고, 개인의 삶의 질과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강화되면서, 더 이상 부부라는 형식적 틀 안에 얽매이기를 원하지 않는 고령 여성이 증가했다. 실제로 노년기 이혼의 주된 신청인은 여성인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또한, 퇴직 이후 남편이 가정 내 생활에 과도하게 개입하게 되면서 ‘퇴직 후 이혼’이라는 현상이 부각되게 시작했다. 이는 경제 활동에서 은퇴한 남성이 가정 내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하고 갈등을 야기하거나, 평생 쌓인 감정적 거리와 불만이 표면화되는 구조와 맞물려 있다. 더불어 자녀가 모두 성장하고 독립한 이후, 부부간 관계를 다시 점검하면서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생애 2막’을 준비하는 고령 여성의 주도적 선택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에는 이혼 이후 여성의 생계유지가 어려워 결혼 유지가 사실상 강제되는 구조였지만, 현재는 국민연금 분할제도(2007년 시행)를 통해 이혼 여성도 일정 부분의 연금을 분할 수령할 수 있게 되면서 이혼에 대한 경제적 장벽이 낮아졌다. 이에 따라 일정한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진 고령 여성이 더 이상 결혼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재설계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일본 고령 이혼의 사회적 파장
고령 이혼이 사회적으로 문제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돌봄의 공백’과 ‘빈곤 리스크’ 때문이다. 기존에는 부부가 서로를 간병하고, 노후를 함께 지지하는 구조였지만, 이혼 이후에는 개인이 각자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며, 이는 돌봄 인프라 부족과 연결된다. 특히 혼자 남겨진 고령 남성은 일상생활 유지 능력이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취약해, 건강 악화와 사회적 고립, 심지어는 고독사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고령 이혼 가구의 빈곤율은 결혼을 유지한 고령 가구에 비해 현저히 높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70세 이상 이혼 여성의 약 40%가 상대적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는 의료비 부담, 주거 비용, 식생활 안정성 등 모든 생활 차원에서 제약을 초래한다. 남성 고령 이혼자 또한 노동 시장 복귀의 어려움과 고립 문제로 인해 동일한 경제적 취약성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지자체와 국가의 복지 시스템에 직접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역사회는 고령 단독 가구에 대한 긴급 복지, 식사 배달, 건강관리, 응급 대응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이에 따라 기존의 노인 복지 예산은 이혼 고령자에게 상당 부분 전환되어야 하는 구조적 압박을 받는다. 더불어, 고령 이혼자의 증가로 인해 가족 중심 간병 체계가 약화되고, 공공복지 의존도가 증가함에 따라 복지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노년기의 ‘관계 재설계’를 위한 제도적 준비
노년기 이혼은 이제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사회적 현실’로 고착되고 있으며, 이를 단순한 가족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고령화 사회가 안고 있는 돌봄 구조, 경제적 자립, 개인의 존엄성과 자아실현이라는 다층적 요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적 과제다. 따라서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이 현상을 예방하거나 단절시키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보다 실질적인 후속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시선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우선, 노년기 이혼 이후의 삶을 지원할 수 있는 주거 정책, 돌봄 정책, 경제적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고령 이혼 가구를 위한 소형 공공주택, 저렴한 의료 서비스 연계 주거 모델, 생활 보조 시스템 확대 등이 요구된다. 또한 이혼 고령자에 특화된 정신 건강 지원, 커뮤니티 재통합 프로그램, 자조 모임 지원 등도 병행돼야 한다. 일본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이혼 고령자를 위한 지역 커뮤니티 센터, 여성 재출발 프로그램 등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령자의 ‘사회적 관계 재설계’를 지원하는 것이다. 단절된 가족관계 이후 새로운 인간관계망 형성을 장려하고, 사회적 연결성을 유지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돌봄, 소득, 관계, 주거라는 네 가지 축을 기반으로 한 고령 이혼자 지원 체계가 구축된다면, 노년기의 이혼이 곧 사회적 위기로 전환되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