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후화 사회

일본 고령자 사후 빈집 증가와 상속 포기의 사회·법적 영향

myview15000 2025. 7. 4. 18:18

일본 초고령 사회가 유발한 ‘사후 빈집’의 확산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 중 하나로, 2025년 이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약 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고령화의 여파는 단지 인구 구조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주거 구조, 가족 관계, 법적 제도까지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일본 사회에서는 ‘사후 빈집’(死後空き家)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 방치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이는 고령자가 사망한 뒤, 상속인이 부재하거나 상속을 포기함에 따라 소유권과 책임이 불분명한 채로 주택이 장기간 방치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국토교통성과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 전역의 빈집 수는 이미 849만 채를 넘어섰고, 이 중 상당수가 소유권 정리조차 되지 않은 ‘사후 빈집’으로 분류된다. 특히 지방 농촌 지역에서는 고령자 단독 가구의 비율이 급증하면서, 사망 이후 해당 주택이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는 사례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빈집은 단순한 경관 훼손을 넘어, 도시계획의 비효율, 범죄 가능성 증가, 방재 기능 저하 등의 사회 문제를 유발하며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심각한 행정적 부담을 안기고 있다. 본 글은 이러한 사후 빈집 문제의 발생 구조와 그 배경인 상속 포기 현상, 그리고 이를 둘러싼 법적·사회적 딜레마를 구조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일본 고령자 사후 빈집 증가와 상속포기 문제

 

 

일본 상속 포기와 ‘소유자 불명 자산’의 확대 구조

일본에서 상속 포기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에 구조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에는 부동산 상속이 곧 자산 증식 수단으로 인식되었으나, 2000년대 이후 지방 부동산의 가치 하락과 관리 비용 부담 증대, 그리고 인구 감소로 인한 활용성 저하로 인해 상속이 ‘리스크’로 인식되는 현상이 확산하였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대법원 사법행정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을 포함한 상속 포기’ 건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농촌 지역 및 중소도시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명확한 자산 가치가 없는 고령자 소유 부동산이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는 구조적 메커니즘이 정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동시에 ‘소유자 불명 자산(所有者不明資産)’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중요 이슈로 떠올랐다. 일본 법무성은 2023년 기준으로 전국 토지의 약 20.3%, 건물의 약 11.5%가 소유자 불명 상태에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러한 토지나 주택은 대부분이 상속 과정에서의 불일치, 포기, 연락 두절 등의 이유로 인해 실질적 권리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일부는 가족관계 등록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방치된 상태다.

이 문제는 법적·행정적으로 심각한 이슈다. 현행 민법상 상속 포기를 선택한 경우, 해당 부동산은 다시 국가나 지자체에 자동 귀속되지 않으며, 법원이 지정하는 상속재산관리인이 해당 자산을 일시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그러나 관리인은 실질적인 활용 권한이 없으며, 처분을 위해서는 복잡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며, 비용 역시 국가가 부담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결과적으로 사망 이후의 부동산이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방치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상속 의지의 부재’뿐 아니라, ‘상속인의 존재 자체가 불확실’한 경우다. 일본은 1980년대 이후 출생률이 급격히 낮아졌고, 1인 가구와 독신 고령자 비율이 증가하면서, 실제로 법정상속인 자체가 없는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또한 일본의 고령자 상당수는 자녀가 도시나 해외로 이주한 상태이거나,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여서 연락조차 닿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사후 재산은 유산도, 사회적 자산도 아닌 ‘법적으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소유자 불명 자산은 공공행정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예를 들어 도로 확장, 방재 설비 구축, 공공주택단지 개발 등 공공사업이 특정 부지를 포함해야 할 경우, 해당 부지의 소유자를 특정하지 못하면 전체 계획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잦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매년 수백 건의 공공 프로젝트가 소유자 불명 토지로 인해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손실이 연간 수천억 엔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 사회는 ‘상속 포기의 일상화’와 ‘소유자 불명 자산의 시스템화’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구 감소나 고령화의 결과가 아니라, 현행 법제와 행정 체계가 더 이상 초고령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구조적 경고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10~20년 안에 본격적으로 사망자가 급증하는 ‘다사 사회(多死社会)’가 도래하면서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속제도의 대대적 개편과 더불어, 사전등록제, 공공 귀속 조항 강화, 디지털 등기 정비 등 선제적 제도 보완이 절실히 요구된다.

 

 

일본 ‘사후 빈집’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복합적 영향

사후 빈집은 단순히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생태적·사회적 기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첫째, 범죄 및 안전 문제다. 빈집은 무단 점유, 방화, 불법 투기 등의 범죄 가능성을 높이며, 특히 야간 조명이 꺼진 채 방치된 주택은 지역 치안에 불안감을 조성한다. 둘째, 자연재해 시의 방재 기능 약화다. 오래된 목조주택이 밀집된 지역에서는 지진이나 태풍 발생 시 붕괴 가능성이 높고, 연쇄적인 화재 확산의 우려도 크다. 셋째, 경관 및 자산 가치 하락이다. 사후 빈집이 늘어난 지역은 주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며, 젊은 세대의 유입이나 투자 유치를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은 지역 공동체의 해체로도 이어진다. ‘빈집이 많은 마을’이라는 낙인은 정주 의욕을 떨어뜨리고, 남은 주민 간의 신뢰와 상호작용조차 약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고령자만 남은 지역사회에서는 돌봄 시스템도 취약해지고, 유사시 행정 대응력도 저하되며, 결국 해당 지역은 ‘자연 해체’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일본 정부가 시행 중인 ‘특정 빈집 지정 제도’나 ‘행정대집행 절차’는 일부 효과를 내고 있으나, 여전히 법적 한계와 인력 부족, 예산 제약 등의 문제로 인해 사후 빈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생전 정리와 법 제도의 재정비

일본의 사례는 초고령사회가 낳은 새로운 주거 위기와, 이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 법·제도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우선, 개인 차원의 자산 정리와 생전 계획 수립이 필수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부 지자체는 ‘생전 정리 등록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고령자가 생전에 재산 배분, 빈집 처리, 장례 방식 등을 사전에 기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아직 전국적 확산이 미비하며, 법적 구속력도 낮다. 따라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생전 정리와 관련한 행정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민법상의 상속 포기 제도와 연계한 공공 토지 귀속 장치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일정 기간 이상 방치된 빈집이나 토지에 대해서는 자동으로 지방자치단체 또는 국가가 관리 권한을 가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사후 빈집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빈집 예보제’ 또는 ‘주거 리스크 지도’ 등을 도입해 예방적 대응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든 정책은 고령자의 죽음이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지역 시스템의 작동 변수’임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개인과 행정, 공동체가 사후 행정 리스크를 함께 분담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