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후화 사회

일본 고령사회와 생전 장례 계약: 개인화되는 죽음의 문화

myview15000 2025. 7. 9. 13:51

일본 고령사회에서의 장례 문화 전환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 중 하나이며, 이는 단지 인구 구성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죽음’이라는 삶의 마지막 국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까지 촉발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주목받는 현상 중 하나는 ‘생전 장례 계약(生前葬契約, Seizen-Sō Keiyaku)’의 급속한 확산이다. 이는 고령자가 자신의 장례를 살아 있을 때 미리 준비하고 계약함으로써, 죽음 이후의 의례 절차와 비용, 참여자 등을 사전에 정해두는 제도적·문화적 장치다.

이러한 생전 장례 계약의 보편화는 일본 장례 문화의 깊은 변화, 즉 ‘가족 중심의 장례’에서 ‘개인 중심의 장례’로의 이행을 반영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장례는 가족 단위로 운영되었고, 후손의 장례 수행은 ‘효(孝)’의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1인 가구의 증가, 무연고 고령자 확산, 가족 간 유대 약화는 이러한 전통적 구성을 흔들고 있다. 그 결과, 장례를 가족의 책임이 아닌 ‘개인의 자기 선택’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으며, 이는 고령사회가 마주한 정체성과 공동체의 변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본 글에서는 일본에서 생전 장례 계약이 확산 배경과 제도적 정착 과정, 그리고 이에 따 나타난 장례 문화의 개인화 양상에 대해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이러한 변화가 장례 산업, 지역 공동체, 사회적 관계망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조망함으로써, 초고령 사회에서 ‘죽음의 사회적 의미’가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일본의 장례문화

 

 

생전 장례 계약의 확산 배경과 제도화 과정

‘생전 장례 계약’은 본질적으로 고령자가 자신이 사망한 이후의 장례 절차를 미리 준비하는 형태다. 계약 내용에는 장례 방식(불교식, 무종교식, 음악 장례 등), 장소, 참석자 범위, 비용 처리 방식, 유골 처리 방법, 유언 및 기념행사 관련 사항까지 포함된다. 이 계약은 장례 전문업체, 비영리 법인, 지방자치단체와 제휴된 장례 조합 등을 통해 이뤄지며, 법적 구속력과 행정적 절차를 갖춘 문서로 체결된다.

이 제도의 급속한 확산에는 여러 구조적 배경이 있다. 첫째, 일본 사회 전반에서 1인 가구 고령자 비중이 증가하면서, ‘돌봐줄 가족이 없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급속히 커졌다는 점이다. 2020년 기준 일본 전체 고령자(65세 이상)의 약 18%가 단독 가구이며, 도쿄·오사카 등 도시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25%를 넘어선다. 이러한 고립은 장례에 대한 사전 준비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들었다.

둘째는, 전통적인 가족 중심 장례가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 구조의 변화다. 가족 간 물리적 거리, 감정적 소외, 상속·간병 갈등은 ‘죽음 이후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맡기는 구조에 한계를 가져왔다. 셋째로는 장례 산업의 상업화와 맞물려, 다양한 생전 장례 계약 상품이 표준화·패키지화되면서 고령자 접근성이 좋아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 소비자청과 장례연합회는 2023년 기준 생전 장례 계약 체결 건수가 연간 9만 건을 넘어섰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이는 10년 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제도적으로도 생전 장례 계약은 법무성과 복지부의 협력 아래 일정 부분 제도화되고 있다. 계약 이행을 보장하기 위한 신탁 계좌, 법정 후견인 협조 조항, 공증 인증 절차 등이 마련되면서, 생전 계약이 단순한 구두 약속이 아닌, 법률상 유효한 사전 지침으로 기능하고 있다.

 

 

일본 장례 문화의 개인화 현상과 사회적 변화

생전 장례 계약의 확산은 결과적으로 일본 장례 문화의 중심축을 ‘가족 공동체’에서 ‘개인 주체성’으로 전환는 결정적 촉매가 되고 있다. 이 개인화 현상은 단순한 의례의 간소화나 비용 절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죽고 싶은가?’,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작별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개인이 자기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점에서, 죽음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질서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생전 장례를 준비하는 고령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이 아닌 친구, 지역 커뮤니티, 봉사자 그룹 등을 장례 참석자로 지정하거나, 추모 방식에 음악·예술·환경보호 등 개인 철학을 반영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또한 일부는 ‘장례식 없는 죽음(No-Funeral Death)’을 지향하며, 유골을 뿌리는 자연장, 디지털 추모관 등록 등 비전통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개인화는 사회적 관계망의 약화와도 연관된다. 후손이 없거나, 후손과 관계가 단절된 고령자들은 법률상 장례 책임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장례를 설계하지 않으면 사후 행정이나 장례 절차가 방치될 가능성이 진다. 실제로 생전 장례 계약은 무연고 사망자의 ‘고독사 이후 처리’ 문제를 사전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도구로도 주목받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가 이 계약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장례의 가족화’가 갖는 공동체적 상징, 정서적 공유의 가치가 점차 약화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장례가 개인화될수록 공동체의 장(場)으로의 기능은 사라지고, 사회 전체의 추모 문화, 죽음 인식, 공동 애도의 형식도 희미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회적 설계

일본의 생전 장례 계약 확산은 단지 고령자 개개인의 선택권 강화로 이해되기보다는, 초고령 사회에서 ‘죽음의 사회적 조직화’ 방식이 무엇 달라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는 인구 구조 변화, 가족 관계의 재편, 장례 산업의 변화, 행정 제도의 대응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어떻게 개인의 죽음을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책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향이 요구된다. 첫째, 생전 장례 계약에 대한 법적 보호 체계와 표준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장례 사업자가 갑작스레 폐업할 경우, 계약자가 사후에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둘째, 무연고 사망자 증가에 대비해, 생전 계약을 복지 행정의 일부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 운영 중인 ‘공공 생전 장례 지원제도’를 전국으로 확산시킬 법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장례를 둘러싼 문화적 논의의 복원이 필요하다. 즉, 죽음을 완전히 개인화하고 시장화하는 흐름에 제동을 걸고, 공동체적 추모와 사회적 애도라는 차원에서 장례를 재해석해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와 종교·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공공적 장례 플랫폼’ 구축은 고령사회에서 장례를 공동 책임의 일환으로 다루는 방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생전 장례 계약은 일본 고령화 사회의 복합적인 위기와 선택 사이에서 나타난 하나의 제도적 진화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누구와 마주할 것인가, 사회는 개인의 죽음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제 각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숙고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